본문 바로가기

성명&논평/발언문

제163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발언문

* 해당 글은 2024년 1월 31일 수요일에 열린 "제163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현장에서 연대하며 발언한 내용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얼마 전, 1월 28일은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김복동 할머니의 5주기였습니다. 김복동 5주기를 맞이하며 저번 주 24일, 수요일에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한 ‘제1632차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또한, 이날은 류석춘 씨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이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며, 전부 거짓말이다’ ‘일본 정부가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류석춘 씨의 망언에, 저는 울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류석춘의 위안부 피해자 모독행위를 합법적이고 정당한 발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해당 발언들에 대해 명예훼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하고 반역사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4년 동안의 법적 투쟁 끝에 나온 이 판결을 접하고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슬퍼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류 교수의 역사 왜곡과 재판부의 방관은 오늘날 한국에서 성행하는 역사 부정의 단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으로 1633회, 30년 동안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온 수요시위는 운동의 결실로 세운 평화의 소녀상 주변을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알맹이 없고 틀린 주장만 뇌까리는 수구파 반동들이 인근에 알박기를 하고, 정부 기관은 “국가가 특정 집회를 우선할 수 없다”는 궤변을 들어 이를 비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몰염치한 작자들은 지금까지의 실증적 증거들을 통해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자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그 실상은, 피해자들이 겪은 경험을 상대화하며 묵살하고,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사실과 증거들은 왜곡하며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것뿐입니다. “실증”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반박에는 “반일 종족주의”다, “종북 빨갱이”다라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망상만 드러낼 뿐입니다.
 이러한 역사 부정은 새삼 새로운 것도, 한국에 독특한 것도 아닙니다. 일본 극우의 노골적인 역사 부정 운동은 1997년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가 언급된 것에 반대하며 결집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식민지배와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극우 파시스트들은 과거에 대한 비판과 반성들을 “자학 역사관”, 즉 자학사관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부정의한 세계관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부흥한 한국의 뉴라이트가 이를 따라하는 것은 새삼 새롭지 않습니다. 그 꽁무니를 쫓아 한국에선 교학사 교과서나 국정교과서 편찬과 같은 운동을 펼쳤고, 일본 우파들은 이를 대서특필하는 나름의 상생 구조도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류석춘 씨가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대한 부정이, 또한 이 버젓이 존재하는 진실에 대한 훼손이 얼마나 길게 이어져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듯 저급한 선전에 휘말리지 말고, 할머니들이 열어주신 지평 속에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들의 말대로 일본군 위안부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소모적으로 따지며 했던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할머니들의 증언으로 밝혀진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린 이것이 다름 아니라 여성의 성과 생식 능력에 대한 착취가,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과 제국주의적 기획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어디서 왔습니까?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조선을 착취하였습니다. 조선 여성에게 이 과정은 안정적인 성 착취의 장소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수반되며, 피지배 민족을 향한 인권 유린, 성적 착취라는 이중 억압을 가하는 구체적 장치로서 기능했습니다. 이는 우습게도 가해자인 일본의 역사에서 이미 나타난 일이기도 합니다. 일본에 개항을 강요한 서구 열강 역시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주의 질서의 확립을 위해 국경 안팎의 여성들에게 이등 시민에 준하는 통제를 발휘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추동된 일본의 근대화는 마찬가지로 자국의 소수민족 및 빈곤여성에게 자유로운 매매를 빙자해 성적 착취를 강요했고, 각지 지방관들은 이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수탈하여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렇듯 일본군 위안부는 자본주의적 근대화라는 더욱 긴 전통의 단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통은 일제의 패전과 조선 독립으로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법을 뒤집어 미군 상대의 위안소를 적극적으로 확충했습니다. 이승만 정부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상위법을 어기고 미군의 허가를 받아 행정명령으로 유엔군 위안소를 설치했고, 이 과정에는 일본군 경력이 있음에도 중용된 간부들이 앞장섰습니다. 이들은 위안부를 ‘5종 보급품’으로 규정해 ‘조달’했고, 그 방식에는 여성을 ‘빨갱이’로 몰아 강간하고 납치하는 것 역시 포함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안소는 휴전 후 기지촌으로 이름만 바꿔 뿌리 내렸습니다. 현대 사회에는 더욱 집중적이고 금융화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결국 이렇듯 국가의 통제 속에서 여성의 성과 신체를 상품화한 산업의 구조는 여성에 대한 제국주의적 수탈 기획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이렇듯 장구한 기획의 현장에서 주조된 역사적 지식입니다.
 하지만 이 역사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 재무장을 지원하고, 한미일동맹 구축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패권과 이윤을 위해 수많은 인민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는 제국주의자들의 망집 속에서, 할머니들이 겪은 아픔은 다시 일어나고 있고,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이 굴레를 틀어막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는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살아계신 아홉 분의 할머니 앞에서 지금이라도 자국의 전쟁 범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엄중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통해 사죄해야만 합니다. 더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한국 시민사회의 우리들은 전쟁에 대한 반대와 성 착취 반대를 외치고 실천함으로써, 국제적으로 횡행하는, 전시 성폭력을 바로잡는 역사적 준거점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졸속 외교식의 공허한 ‘강제동원 제3자 변제’가 아니라 확실한 진상규명 요구로 응답해야만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분들과 우리 연대의 목소리가 부르짖어온 진실이, 진실로서 공언될 때라야, 국제적으로 횡행하는 이 전시 성폭력이 근절되는 역사적 준거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역사를 다시 이해하고, 뭉쳐, 싸워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류석춘 씨의 망언에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저 또한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이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저희가 기억하는 한 결코 잊히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또 다른 이들이 상처를 가지지 않을 때까지 반제국주의 학습모임 반격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부분만 세 번 외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법원은 허위사실 명예훼손 인정하고 가해자처벌 실시하라!
일본 정부는 전쟁범죄 인정하고 법적책임을 다하라
전시 성폭력 뿌리뽑자 위안부문제 완전 해결하자!